한 해를 돌아보게 되는 12월. 개인적으로 지난 10월 GPHG 2016 수상 후보작 서울 전시와 11월 제네바에서 열린 GPHG 시상식 참관이 기억에 남는다. 이 두 행사를 직접 경험하며 한국 그리고 세계 시계 시장의 추세를 다소나마 피부로 느꼈던 탓이리라.
GPHG 수상 후보작 서울 전시는 10월 10일부터 4일간 열렸다. 장소는 롯데호텔 서울, 12개 부분 72점의 후보작이 소개됐다. 지난해에는 서울에서 처음 열린 전시를 관람했지만, 올해는 진행의 일원으로 참가해 또 다른 시각으로 행사를 볼 수 있었다.
첫날에는 언론 및 업계 관계자를 초대한 오프닝 행사가 열렸다. 수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브랜드 관계자들은 자부심과 함께 대부분 자기 브랜드의 수상을 점쳤다. 서울 전시 후원사인 롯데백화점과 스위스 대사는 축사를 통해 한국 시계 시장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세계적인 은행 혹은 회계 법인이 후원사로서 초대됐고, 온라인 보도의 비중이 높아진 만큼 뜨거웠던 사진 기자들의 촬영 열기가 인상적이었다.
둘째 날과 셋째 날은 전시를 일반 공개했다. 관람객은 남성에 편중됐지만 연령층은 다양했다. 청장년과 중년층, 초로의 신사는 물론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행사장을 찾았다. 하나같이 진지하게 시계를 살펴보는 모습을 보며 국내 시계 시장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으며, 양적인 팽창에서 질적인 성숙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날은 서울 전시 후원사인 롯데백화점의 고객을 초대한 행사였다. 일부 고객은 기계식 시계에 대한 식견이 높았다. 특히 여러 시계 브랜드과 기계식 시계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여성 고객들을 만난 점이 흥미로웠다.
서울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한층 성숙해진 우리 시계 시장의 가능성을 엿보았다면, 제네바에서는 녹록지 않은 업계 상황을 체감할 수 있었다. 11월 10일 제네바 레만 극장에서는 GPHG 2016 시상식이 성황리에 열렸다. 1,300여 명의 시계 업계 관계자와 귀빈들이 참석해, 12개 부문별, 그리고 최고상 등 추가로 총 15개 부문의 수상자를 축하했다. 시상식에 이어 마련된 만찬 역시 화기애애했다. 서울 전시 기획사인 매뉴얼세븐과 <시계매뉴얼>은 남성시계 부분을 수상한 그뢰네펠트 형제의 형인 바트 그뢰네펠트를 비롯해, 트로피 박스 제작사 및 클로드 메일란 대표, 전 제네바 시장, 회계 법인 마자르와 제네바의 유서깊은 초콜릿 제조사인 파바르제 관계자 등 GPHG에 협조한 후원사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됐다. 바트 그뢰네펠트는 수상에 대해 기뻐하면서도 다른 한편 고급 시계를 생산하는 독립 제조사로서의 고충을 토로했고, 시장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세계적인 하락세는 물론 예외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스위스 시계산업협회에서 연이어 발표한 수치는 이런 우려와 한국 시장에 대한 기대를 뒷받침한다. 2015년 스위스 시계의 나라별 수출 통계를 보면 1홍콩과 중국이 각각 -22.9%와 -4.7% 성장한 반면, 한국은 0.2% 성장했다. 국가적으로 메르스 사태를 겪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더 의미가 깊다. 최근 발표한 10월 실적 수치도 살펴보면 2016년 10월까지 스위스 시계 시장의 누적 성장률은 -11%에 이른다. 4분기에 대해 회복세를 기대했지만, 10월 세계적인 매출은 지난해 대비 -16%로 올 들어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다고. 예외인 나라가 중국, 영국, 그리고 한국이다. 중국은 반등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부정적이라는 분석. 영국은 브렉시트 투표 이후 환율 변동의 여파로 반짝 특수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10월 실적이 -1.2%에 머문 한국은 꾸준히 선방하는 시장으로 두드러졌다. 덕분에 스위스에서 만난 시계업계 관계자들도 한국 시장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고 심지어 활로를 찾을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관계자들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정치, 사회적 혼란으로 소비 심리가 극도로 위축됐고, 큰 손인 중국 관광객도 급감했다. 특정 브랜드 쏠림 현상도 심하다.
몇 해전 스마트 워치의 본격적인 등장을 앞두고 많은 이가 제2의 쿼츠 파동을 염려했지만, 파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기계식 시계가 단순한 정밀 기계라기보다는 취향을 과시할 수 있는 기호품이며 문화 유산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기계식 시계가 그 가치를 계속 인정받을 수 있을지, 시장의 침체기를 맞게 될지는누구도 속단할 수 없다.
한국 시장도, 세계 시장도 급변하고 있다. 여러 수치는 부정적이며, 스마트 워치가 아닌 어떤 난제가 등장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시계 전시장을 찾았고, 미래의 젊은 시계제작자들이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빈티지 시계 시장도 조용히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 역시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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