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소규모로 시작한 작은 자동차 박람회는 미국이 자동차 산업의 중심이 되면서 1957년 국제적인 행사로 규모를 키웠고 1989년부터 북미 국제 자동차 박람회NAIAS: North American International Auto Show라는 이름으로 100년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바로 디트로이트 오토쇼 얘기다. 1897년 시작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이어 1898년 프랑스 파리 모터쇼, 1900년 뉴욕 국제 모터쇼에 이어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자동차 박람회로 역사와 규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101회를 맞이한 2018년 2월 메르세데스 벤츠가 2019년 디트로이트 오토쇼 불참을 발표한 데 이어 3월 BMW도 이에 동참했다. 이미 이를 예고한 듯 BMW는 2017년 바이크, 롤스로이스, 미니를 선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디트로이트 오토쇼뿐만 아니다. 2018년 6월 볼보도 2019년 제네바 모터쇼에 나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왜 탈박람회 현상이 일어난걸까?
이유는 제품을 알릴 수 있는 출구가 다양해진 까닭이다. 예전에는 한자리에서 주요 바이어와 제품에 관심이 높은 고객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박람회 참가가 꼭 필요했지만 최근 판도가 바뀌었다. 신제품 정보는 통신망을 통해서 더 빨리 전달할 수 있고 매체를 통하지 않고 브랜드에서 직접 발표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한정된 규모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임대하는 행사보다 정체성을 잘 보여줄 수 있도록 꾸민 소규모 지역 행사가 더 높은 효과를 발휘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또 1년에 한 번 시기를 맞춰 보여주기 위해 미완성 견본이나 시제품을 공개하고 그 후 실제 구현되기까지 간극이 커지면 출시 시점에는 도리어 관심이 시들해지는 것도 한 이유다. 도쿄(1954년), 상하이(1985년), 베이징(1990년), 서울(1995년), 부산(2001년) 등 신흥 모토쇼의 출현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더불어 밀라노 패션 위크에 나간 볼보처럼 동종 업계와 경쟁없이 다른 분야와 결합하면서 폭넓은 고객 확보하는 등 융합 전략으로 효과를 본 경험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알리바마, 아마존 등을 통한 이커머스의 확대도 또 다른 이유다.
장황하게 자동차 업계 동향을 얘기한 이유는 시계업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2017년 바젤월드가 끝난 후 부쉐론이 바젤월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에르메스도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로 가겠다고 발표하고 몬데인 등 작은 브랜드들은 바젤월드 전시장 근처 카페를 빌려 프레젠테이션을 여는 등 탈전시장의 조짐을 보이긴 했다. 이러한 현상은 2018년 두드러졌다. 지난 4월 바젤월드에는 모바도 그룹이 빠지는 등 자그마치 600개 이상 빠져나가 650여개 브랜드만 참여했고 박람회 일정도 9일에서 2일 줄이는 등 그 규모도 축소됐다. 그런 가운데 7월 28일 스위스에서 가장 취리히 거점 신문, 노이에 취르허 자이퉁Neue Zürcher Zeitung에서 2002년부터 발간하는 일요일 주말판, NZZ 암 손탁NZZ am Sonntag의 기자 다니엘 후그Daniel Hug는 기사에서 스와치 그룹도 바젤월드를 떠날거라고 밝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기사에 따르면 닉 하이예크 현 스와치 그룹 회장이 “오늘날 모든 것은 투명하고 빠르고 즉각적으로 움직이며 자발적인 진행도 가능해졌다. 때문에 전통적인 시계박람회는 유용하지 않다.”라고 인용구도 첨부했다. 이는 위에서 밝힌 자동차업계의 탈박람회 현상과 비슷한 이유다.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를 통한 다각적 마케팅, 지사나 현지 지역 행사를 통해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지금, 새로운 변화에 맞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 이뿐만 아니다. 바젤월드 운영사는 2013년 유명한 건축가 헤르조그 & 드 메론Herzog & de Meuron에 의뢰해 엄청난 파사드를 비롯해 내부를 고쳤는데 이렇게 외관에 치중한 나머지 실제 박람회 내용의 변화는 볼 수 없었다는 평도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자그마치 3억 5천만 유로(한화 약 460억 원)의 예산을 넘어 4억 4천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500억 원)이 소요됐고 바젤-스타트 주, 바젤랜드, 취리히 등의 투자보조금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 금액의 감가상각비의 소멸 시점은 2020년은 되어야 하는데 이미 적자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기대했던 바젤월드가 하향세를 보이고 있으니 운영하는 MCH 그룹도 뭔가 조치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 3월 말 박람회를 끝낸 후 설문조사를 하거나 계속해서 뉴스레터를 보내는 한편 7월 1일에는 실비 리터Sylvie Ritter가 떠나고 미셸 로리-멜리코프Michel Loris-Melikoff를 새로운 매니징 디렉터로 영입하는 변화를 보여줬다. 그는 은행에서 경력을 쌓은 후 취리히 스트릿 퍼레이드 대표를 거쳐 3년 전 MCH 보리우 로잔 SA의 이사로 합류했다.
7월 30일 월요일 바젤월드도 공식 입장을 밝히는 보도자료를 보냈는데 르네 캄René Kamm은 “새로운 팀, 정신, 아이디어가 오는 중에 듣게 된 스와치 그룹의 결정은 유감이다.”라고 밝혔고 아울러 로리-멜리코프는 이미 준비 중인 새로운 바젤월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청사진을 발표했다.
‘2019년에는 1관Hall 1에 주력할 것이다. 이전과 달리 독립시계제작사들을 모은 레 아틀리에 Les Atéliers를 1관 남쪽에 배치할 것이며 1.1관에서는 시계제작 예술을 보여주는 ‘측시학의 예술 Métiers des Horlogers’ 전시를 펼치고 케이터링 서비스도 포장부터 3성급 레스토랑까지 다양하게 준비할 것이다. 1.2관에서는 주얼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줄 240° 캣워크 LED 스크린을 설치하는 등 최고의 주얼리를 보여주는 새로운 ‘쇼 플라자Show Plaza”를 마련한다. 쇼 외부로는 호텔, 레스토랑 업계와 일종의 헌장Charta을 체결, 적절한 금액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협의 중이다.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챗봇chatbot, 아시아를 위한 위챗WeChat 등 혁신적인 디지털 포맷을 도입하겠다’ 그리고 말미에 스와치 그룹이 참여하지 않는 건 대단히 유감이지만 다른 시계 브랜드는 참가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스와치 그룹이 결정을 재고할 수 있도록 건설적인 토의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다른 브랜드라면 파텍 필립, 롤렉스, 그리고 LVMH그룹의 태그호이어, 위블로, 제니스 등을 말한 것일텐데… LVMH 그룹의 수장 장 클로드 비버도 ‘당분간은 남아 있겠다. 그러나 박람회는 변해야 한다’라고 남긴 것으로 봐서는 결정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매도 먼저 맞는 맞는 놈이 낫다’라는 속담이 있듯 바젤월드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두 번째로 주목받는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는 일찌감치 경험하고 대처 방안을 세웠다. 2012년까지 18개까지 참여 브랜드를 끌어 올렸으나 2013년 소윈드 그룹의 장리샤르, 지라드 페리고가 바젤월드로 가버리면서 2015년까지 3년간 16개 브랜드만 참가했었다. 그러나 SIHH 주관사인 고급시계재단 Fondation Haute Horlogerie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SIHH와 별도로 9월 말 고객 비중이 높은 홍콩을 거점으로 아시아 최초의 고급시계박람회인 워치스 앤 원더스를 열었고 2018년에는 미국 마이애미에 다시 열었다.
고급시계아카데미(초창기에는 HH 아카데미, 현재는 FHH 아카데미)를 설립해 판매직부터 마케팅부서까지 가르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인증 시험에 교육용 애플리케이션 제작까지 다양한 물밑 작업을 펼쳤을 뿐만아니라 시계업계 핵심 인원들을 자문단으로 구성해 포럼도 열었다. 2016년부터는 SIHH 기간 호텔이나 건물을 빌려 제품을 소개하던 독립시계제작자들을 흡수했고 2017년부터 바이어와 기자에게만 한정해 굳게 닫았던 문을 일반인들에게도 열었다. 2018년에는 현장 컨퍼런스 라이브 스트리밍, 위챗을 포함한 각종 SNS 등 디지털 세대를 위한 생동감 넘치는 활동을 펼쳐나갔다. 참여 브랜드는 35개로 많지 않지만 GPHG, 살롱 QP, 두바이 워치 위크 등과 손잡고 전시와 교육 활동도 하고 있으니 ‘고급’ 시계브랜드라면 바젤월드와 크게 비교할 수 밖에 없겠다. 이미 LVMH 그룹 소속 시계 브랜드와 쇼파드, 샤넬, 에르메스 등 독립 시계 브랜드까지 42개 회사가 FHH 협력사로 서비스를 받고 있는 상태다.
과연 바젤월드는 이 난관을 극복할 것인가? 참여 브랜드보다 102주년을 맞는 행사 자체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바라보는 시점에서 기대할 만하다. 2019년 바젤월드는 3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간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