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업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박람회를 꼽는다면 바젤월드라고 할 수 있다. 1907년 설립 이래 이미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시계 브랜드는 물론 주얼리와 원석, 시계 부품, 포장재 등을 만드는 회사들도 참여하고 스위스를 넘어 프랑스, 일본, 독일, 홍콩 등 각국의 제조사들도 참여하니 그 규모가 매우 컸다. 그러나 2017년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도 잠시, 바젤월드는 점점 삐걱거리고 있었다. 이미 높은데 박람회 기간 더 치솟는 높은 스위스 물가를 감수하더라도 박람회 자체에 들어가는 비용도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인쇄매체보다 실시간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시대에 돌입하면서 참가하는 브랜드들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2018년 7월 스와치 그룹이 탈바젤월드를 선언하며 2019년 독자적인 시계박람회, ‘타임 투 무브’를 개최했고 LVMH 그룹 산하 시계 브랜드도 2020년 1월 두바이에서 그들만의 시계행사를 열었다. 바젤월드도 대표를 교체하며 나름 분골쇄신했고 작년 2020년에 대한 희망적인 계획을 다짐하면서그 첫 행보로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에서 이름을 바꾼 워치스 앤 원더스(1월에서 4월로 개최시기를 옮김)와 함께 행사를 연이어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2020년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의 영향으로 모든 행사는 내년으로 미뤄졌다. 오히려 바젤월드는 1월, 워치스 앤 원더스는 그대로 4월에 열겠다는 발표를 내놓은 것이다.
올해 계획대로라면 4월 24일 워치스 앤 원더스가 시작되어야 하지만 4월 14일 스위스 시간으로 오전 발표된 공식 성명서에 따르면 파텍 필립, 롤렉스, 쇼파드, 샤넬, 튜더가 고급시계재단(Fondation de la Haute Horlogerie: 워치스 앤 원더스의 진행사)과 손잡고 바젤월드를 떠나 새로운 시계 박람회를 만들겠다는 소식이다.
이렇게 된 시발점은 바젤월드 주최측이 2020년 일방적으로 1월에 개최하겠다고 발표한 까닭이다. 롤렉스와 튜더 제네랄 디렉터, 장-프레데릭 뒤포(Jean-Frédéric Dufour, Directeur Général, Rolex SA, Administrateur, Tudor)는 “1939년부터 바젤월드에 참여했다. 바젤월드 주최사 MCH 그룹이 내린 결정을 감수하려 했지만 결국 바젤월드 참가를 철회하기로 했다. 우리의 비전을 공유하고 스위스 시계 산업에 대한 확고한 지원을 제공하는 파트너들과 함께 새로운 살롱을 만들 것이다.”라고 밝혔고 파텍 필립의 티에리 스턴 회장(Thierry Stern, Président, Patek Philippe)도 “4세대를 이어오며 전통적으로 참여해온 바젤월드를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삶은 진화하고 상황은 달라지며 사람들도 변한다. 파텍 필립의 비전은 더 이상 바젤월드의 비전과 부합하지 않는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와 토론 속에 신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소매상, 고객, 언론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새로운 도전과 적응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하면서 제네바에서 파텍 필립만의 노하우를 잘 보여주는 독특한 이벤트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샤넬 시계와 주얼리 부문 대표, 프레데릭 그랑지에(Frédéric Grangié, Président de Chanel Horlogerie – Joaillerie)는 “샤넬은 스위스 독립 시계 브랜드의 가치, 노하우, 품질을 보호하고 장려하는 비전을 공유한다. 이는 1987년 샤넬이 처음 시계를 선보였을때부터 장기적인 전략이었다. 새로운 박람회를 통해 우리는 높은 기준에 맞는 환경에서 시계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마찬가지로 독립시계제작사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쇼파드의 칼-프레드리히 슈펠레 회장(Karl-Friedrich Scheufele, Co-Président Chopard et Cie SA)도 “쇼파드는 1964년 바젤월드에 처음으로 전시를 했으니 55년이 넘었다. 신중하게 고심해서 바젤월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파트너들과 함께 스위스 시계제조의 가치와 이익을 지키는 데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고급시계재단 협회를 대표하는 제롬 랑베르 감사(Jérome Lambert, au nom du Conseil de fondation de La Fondation de la Haute Horlogerie)는 “2021년 4월 초 제네바에서 새로운 워치스 & 원더스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모든 사람을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MCH 그룹은 헤르조그 앤 메론과 손잡고 멋진 전시회장을 만드는 듯 외형적으로는 큰 변화를 보여줬지만 정작 진행 방식은 동일했고 그 결과 비용만 높아진 것 같은 바젤월드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이에 반해 고급시계박람회(SIHH)와 워치스 앤 원더스를 주최하는 고급시계재단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초대된 사람들에게만 공개하는 폐쇄적인 방식을 벗어나 일반인 공개, 홍콩이나 마이애미에서 별도의 시계박람회 개최, 박람회 중 실황 중계와 SNS 활성화는 물론 고급시계재단의 아카데미를 만들어 시계업계와 고객들을 위한 교육과 인증시험 제도를 만드는 등 시계제조의 전통과 역사, 노하우를 전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을 해 왔다. 결국 시대는 변하는데 변치 않는 건 도태되기 마련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번 사태를 통해 바젤월드는 과연 어떻게 변할 것인가, 강력해진 워치스 앤 원더스는 내년 과연 순항할 것인가 매우 기대된다.
Text © Manual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