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민족주의, 민주주의 등을 강조해 교육, 계몽을 목표로 한 탓에 외국 정보가 실려 있었고 덕분에 시계에 관한 소식도 짧게 나마 쓰여 있다. 1897년 3월 4일판 <독립신문>에 적힌 ‘외국 통신’ 중 한 문장 소식이다!
시계는 사백 이십 일년 전에 구라파 스위스 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더라
당시 421년 전이라면 1476년이 된다. ‘처음으로’라고 표기되어 있고, 지금도 그렇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스위스에서 기계식 시계가 최초로 개발된 것은 아니다. 스위스가 시계의 본고장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스위스보다 먼저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도 시계를 만든 기록이 있다. 스위스에서는 15세기 들어 시작, 이후 본격적으로 제작해 수출을 했으니 그렇게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지금은 컴퓨터, 휴대폰 등 여러 물건들이 시간을 알려주고 저렴한 가격에도 구입할 수 있지만 100년 전에는 시계 하나 구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고가 기계식 시계의 경우에는 지금도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옛날에는 지금보다 더 구하기 힘든 사치품이었다. 그래서 옛날 신물을 찾아보면 시계 도둑이 은근히 많다.
독립신문 1897년 11월 2일자 3면 기사에 시계를 도둑맞았다는 기사가 나온다.
영국 의녀 대부아가 새문안 서궐 안에서 유람 하는데 그 때에 십사오 세 가량 된 어떠한 대한국 아이가 영국 의녀를 대하여 무르되 지금 시간이 몇 점 종이나 되었나뇨 한즉 그 의녀가 자기의 금으로 꾸민 시계를 내어 그 아이를 주면서 보라 하거늘 그 아이가 당초에 도적의 행실을 가졌던지 그 시계를 가지고 인하여 가만히 도망을 하였다더라
16일자 신문 4면 2단에 도둑 맞은 시계를 찾는 광고가 나온다.
외국 부인이 금 시계 하나와 사슬과 연필과 인을 새문안 대궐 안에서 어떤 아이에게 잃었으나 누구든지 이 시계를 가지고 독립 신문사로 오시면 상금 삼십 원을 탈 터이니 찾아 오시오.
당시 삼십원이면 상당히 큰 돈이긴 하다. 그런데 이 시계 광고는 11월 18, 27, 30일자 신문에 계속 나오는 걸로 봐서 아무래도 찾지 못한 모양이다.
Text © Manual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