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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Old newspaper – 6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창간한 일간신문이다. 영국인 베델Bethell, 한국 이름 배설이 발행인과 편집인으로 한글과 영어로 발간됐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검열망을 피하기 위해 영국인 명의로 발행했고 국난을 타개하고 배일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해 고종의 은밀한 보조와 신채호를 비롯한 애국지사들의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신문도 탄압에 의해 1910년 8월 28일까지 발행되다가 경술국치 다음날 대한을 빼고 <매일신보>로 총독부기관지로 바뀌었다.

이 기사는 1908년 5월 22일 대한매일신보 2면 2단에 실린 소식이다.

운동회상품
비원운동은 회생하였다더니 다시 드른즉 작열에 성힝되었는데 각부 대신과 궁녀복 일반관리가 일제히 참여하고 상품은 금시계와 은시계와 연필사빅동과 공책사백벌인데 일등에는 금시계를 주고 이등에는 은시계를 주고 그외에는 연필과 공책으로 반급하였다더라.

1886년 육영공원, 이후 배재학당, 이화학당에 이어 1905년 전국 각지에 사립학교가 창설되어 그 해 관립, 사립 소학교 연합 대운동회가 열렸다고 한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후 1908년 5월에는 학부 주최 특별 비원 운동회도 개최됐다. 지금은 창덕궁 후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고종 황제 부처는 직접 참석해 참가 학생들을 격려하고 점심식사도 제공했으며 경기 종료 후 오후 6시에는 상품 직접 하사했다고 한다. 고종 황제는 1등상으로는 시계를 준 모양이다. 어떤 시계인지 궁금하지만 어느 박물관에 가면 실물이 있을지… 혹시 금시계든 은시계든 찾으신 분이 있다면 소식을…그 외 연필 400타, 우산 20개, 황모필 600자루, 먹 300개, 수첩 600권, 가죽 가방 20개를 하사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 운동회도 일제의 방해로 1909년 4월 30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창덕궁 후원 구경을 가야하지만 지금은 갈 수가 없다. 창덕아리랑 AR 투어도 해보고 싶은데…

Text © Manual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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